원영배 부제
“평화 칼럼 100회 맞으신 소감이 어떠세요?”
2주전, 미주 가톨릭 평화신문 편집자의 인사를 들었을 때 벌써 그리 되었나 하고 잠깐 놀랐습니다. 팬데믹으로 온 세상과 교회 문이 닫힌 시기에 기고를 시작해 2년이 지난 지금, 나름의 감회를 느낍니다. 100이라는 숫자는 인류의 여러 문화권에서, 무엇보다 성경에서 완전함과 완숙한 상태를 상징합니다. 제게 주어진 작은 지면 위에도 내걸린 숫자 ‘100’의 충실한 의미를 찾아 밝혀 봅니다.
우리의 옛 세시풍속에서 아기가 태어나 백일이 되면 잔치를 벌여 가족과 이웃들이 함께 축하하는 공동체의 경사로 여겼습니다. 백일은 잉태에서 시작된 생명의 첫 1년을 기념합니다. 모태에서 아홉달을 살고 나온 아기는 계속 보살핌이 필요한 여린 생명체입니다. 약하지만 혼자 조금씩 목을 가누게 된 아기가 세상을 향해 살아나갈 준비를 마친 기쁨에 떡과 선물의 백일잔치가 풍성해 집니다.
전통적으로 백일잔치에 삼신상(三神床)을 정성들여 차리고 산모와 아기의 무병 무탈과 장수를 기원했습니다. 평화 칼럼은 성부와 성자, 성령의 성삼위의 자비와 은총에 힘입어 과거 삼신에 대한 축원보다 드높고 거룩한 축복을 나눕니다. 매주 어떤 글을 쓸지 딱히 정하고 시작하지 않았지만, 예전부터 탐구해온 문화와 영성이란 주제에 이끌립니다.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안에서, 교회를 통해 세상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려 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귀를 열고 독자들과 나눌 소망 가운데 발길을 옮깁니다.
100회로 한 매듭을 지으면서, 더욱 새로움으로 완전해질 앞으로의 시간을 바라봅니다. 아브라함은 백살에 원하던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그는 지켜보시는 하느님의 눈길 속에 새 생명을 키우고 다시 하느님께 바치기에 이릅니다. 칼럼 쓰는 일이 어느덧 백회를 넘긴데는 신문사와 독자들의 성원이 받쳐주어 가능했습니다. 글을 읽고 연락주신 독자께서 좋은 길동무가 되어주신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독자들의 더많은 격려와 조언을 기대합니다. 미주 가톨릭 평화신문의 전임및 신임사장 조재형 신부님, 김찬미 신부님과 편집인 허정호 자매님, 늘 도와주신 김혜성 자매님과 직원들께 감사 드리며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아 성삼위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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